고대 기술을 볼 수 있는 경주 유적지

첩첩산중
첩첩산중

경주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 27대 왕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천문관측대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이다.

전체 건물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는데 높이 9.17m, 위쪽 지름 3.1m, 아래쪽 지름 5.17m이며, 받침돌은 한 변에 5.35m이다.

2층 받침돌과 기단은 장방형으로 8매와 15매의 장대석을 쌓고, 위쪽을 다시 27단으로 나누어 원통형으로 쌓았는데, 아래 폭은 좁고 위쪽은 좁은 모습을 하고 있다.

첨성대는 한 층당 높이가 약 30cm이고, 맨 꼭대기에는 우물자 모양의 긴 돌멩이가 2개씩 쌓여있는데, 일종의 관측기를 놓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별하늘을 통해 24절기를 측정한 반면, 정자석은 신라시대의 자오선으로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어 과학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며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석조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경주 석빙고

석빙고는 돌로 만든 빙고를 뜻하는 옛 냉장고를 말하며, 세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고대 빙고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반월산에 있다.

이 훌륭한 고대 유적의 외관은 매우 초라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입구 가까이만 가도 한기가 느껴지는데, 석빙고는 지기가 추운 곳에 지면과 벽은 화강암으로 제작되었고 꼭대기는 아치형이며 통풍구가 있는 구조이며, 절반은 지상에, 절반은 지하에 있는 신기한 구조는 한국 고대의 앞선 과학기술을 보여준다.

석빙고를 지을 때 마지막으로 석회를 많이 사용해 외부의 습기와 빗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고, 빙고 바닥은 얼음 녹은 물줄기가 흐를 수 있도록 기울어져 있으며, 화강암 꼭대기에는 마지막 흙을 발라 통풍구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빙고에 얼음을 저장할 때는 지푸라기를 사용해 열을 차단하여 냉기를 보존할 수 있었다.

현대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실험을 해봤는데 짚으로 단열해 얼음을 보존했을 때 6개월 뒤 얼음이 0.4% 줄어드는 데 그쳤다.

고대에는 이곳에 보관된 얼음이 여름에는 상류층의 최고급 간식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많은 역사서에는 왕이 얼음 저장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석빙고는 최소 1500년 전부터 건축돼 사용돼 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의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AD1733년)에 지어진 것으로 내부 길이 12.27m, 폭 5.76m로 원형이 잘 보존된 석빙고 중 하로 국가가 관리하는 유적으로 보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황룡사지

황룡사지는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앞마당에 위치한 신라 최대의 호국대사찰이자 옛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를 집대성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14년 황룡사가 세워진 지 17년 만인 569년 서원에 세워졌다.그러나 몽골의 침입으로 사원은 전란으로 파괴됐다.

1969년 7월 이곳 강당지를 답사하던 중 금당과 강당, 탑터의 초석이 발견되었고, 1976년 3월부터 8년간 황룡사지 고고학 발굴공사를 벌여 황룡사만의 독특한 1탑 3금당식 사찰 배치가 발견됐고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기단을 포함한 건물 하반부의 구조는 확인되나 상반부는 정확한 고증이 불가능하여 기단부를 복원하고 전면복원을 포기하였다.

출토된 유적으로 미루어 볼 때 황룡사는 불국사보다 무려 8배나 넓은 8,800평의 넓이로 추정되며, 현재 우리나라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순하게 모습을 본다면 이 사찰은 과학과는 관련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이곳은 신라가 백제의 건축 장인을 통해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던 장소이다.

이 탑의 중심 기둥에는 가로 4미터, 세로 3미터, 무게 30톤에 달하는 심초석이 자리잡고 있었고 목탑의 규모는 높이 80미터로 현재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 30층에 가까운 높이라고 전해진다.

이 목탑은 층마다 백제, 탐라 등 주변국의 이름을 지어 넣었는데 강한 나라가 되고자 하는 신라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골굴사

함월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골굴사는 수십m 높이의 거대한 석회암 위에 12개의 석굴이 있고 암벽의 가장 높은 곳에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법당굴의 내부에는 벽을 두고 기와를 덧대어 기와집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석굴로 천장과 벽이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고, 북쪽 벽면에는 감실을 뚫어 부처를 모셨으나 마모가 심하여 원래의 표정을 알 수 없다.

법당굴은 다른 동굴들과는 다른 크고 작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과 4~5명이 앉을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까지 있고, 내부에 모셔진 불상들도 각기 다른 자태로 귀여운 동자승과 위엄있는 노스님들이 있다.

굴과 굴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는 돌로 만든 가파른 계단으로 산꼭대기에 올라가 마애불을 보려면 천연동굴을 지나야 한다.

원래 마애불상과 다른 12곳의 석굴에 모두 목조기와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목조전실이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석굴만 남아 있다.

절벽 정상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으로 보물 제581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에 조각돼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오랜 풍화로 훼손이 심해 지금은 유리지붕을 얹었다.

근래 골굴사에는 불가의 전통 수련법인 선무도 수련원이 개설되어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는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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